경인통신

동양스포츠 최초 올림픽 정식종목 ‘유도’

힘의 역학 이용 공격·방어 이뤄져…종주국 일본 강세…한국·프랑스도 강국

조홍래 기자 | 기사입력 2016/08/29 [10:55]

동양스포츠 최초 올림픽 정식종목 ‘유도’

힘의 역학 이용 공격·방어 이뤄져…종주국 일본 강세…한국·프랑스도 강국
조홍래 기자 | 입력 : 2016/08/29 [10:55]
22 유도.jpg

동양의 무예 중 올림픽에 가장 먼저 정식종목이 된 것은 유도다.
유도는 세계유도선수권, 아시안게임,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써 가장 인기 있는 무예다.
유도는 손과 다리를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리고 조르고 누르는 등 상대의 공격을 역이용해 제압하는 스포츠다.
유도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의 무술로 이어져오다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16세기께 유술(柔術)이라는 맨손무예가 있었으며 여러 유파의 유술들이 존재해왔다.
현대의 유도는 19세기 후반 가노 지고로에 의해 정립됐다고 전해진다.
가노 지고로는 이 유술을 정리해 강도관유술을 만들어 오늘날의 유도로 정착시키는데 이바지해왔다.
가노 지고로의 노력 끝에 유도는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됐으며 그의 아들인 가노 세이에 의해 1951년 IJF(국제유도연맹)를 결성했다.
가노 세이는 1956년에 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개최했고 1964년 18회 도쿄올림픽에 유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도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국내에 유도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906년 당시 흑룡회출신의 우찌다 료헤이가 서울 명동에 개설한 우찌다 도장을 열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찌다는 당시 군인, 경찰, 교도관들에게 유도를 지도했다.
이에 독립운동가였던 이상재 선생은 장사 100명을 육성하라고 해 기독교청년회(YMCA)에 유도반을 설치해 유도를 배우게 했다.
유도는 광복 후 조선유도연맹이 결성되면서 활발히 보급됐다.
조선유도연맹은 1950년 대한유도회로 재결성됐으며 1953년 후진 양성을 위해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대한민국의 유도 발전에 앞장서왔다.
지금도 매년 전국체육대회를 비롯해 초·중·고등학교유도대회, 대통령배전국유도대회 등을 통해 유도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끝에 한국 유도는 각종 국제 대회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1964년 18회 도쿄올림픽에서 김의태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한 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대회 등에서 수많은 메달을 목에 걸어왔다.
올림픽만 보더라도 안병근, 하형주, 김재엽, 이경근, 전기영, 이원희, 최민호 등 여러명의 금메달 수상자를 배출했다.
유도선수 출신중에서는 다른 무예보다 유명인사가 많은 편이다.
‘사랑이 아빠’이자 이종격투기선수 추성훈, 현역 UFC선수 ‘스턴건’ 김동현, 2012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등 유도는 그 어떤 무예보다 우리와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세계무예마스터십 조직위원회에도 유명한 유도선수들이 있다.
조직위원인 청주대 박종학 교수는 세계선수권대회 국내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이고, 집행위원인 공군사관학교 김병주 교수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우승이자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며, 홍보대사인 용인대 전기영 교수는 청석고 출신으로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등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국제유도연맹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장본인이다.
유도는 업어치기나 허리후리기 기술 등 힘의 역학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도는 종주국인 일본이 전통적인 강국이며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미국, 브라질 등이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유도경기는 9월 3일과 4일 이틀간 청주유도회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마스터십대회에서의 유도경기는 겨루기경기가 아닌 가타(形)경기를 한다. 유도의 겨루기경기에서 사용할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을 가타경기에서 볼 수 있고 유도 고단자들의 실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진정한 마스터십경기를 느낄 수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