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통신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의 정수 ‘검도’

무예마스터십서 유일하게 무기로 겨뤄…손목·머리·허리 타격, 목찌름만 가능

조홍래 기자 | 기사입력 2016/08/30 [21:28]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의 정수 ‘검도’

무예마스터십서 유일하게 무기로 겨뤄…손목·머리·허리 타격, 목찌름만 가능
조홍래 기자 | 입력 : 2016/08/3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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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손목! 찌름! 허리!".
2016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 유일하게 병기를 들고 겨루는 종목이 있다. 바로 검도다.
검도는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이용해 상대방을 타격해 승부를 겨루는 투기 스포츠이다.
검도는 인류가 적을 공격하고 자기 방어를 목적으로 막대기를 사용한 것으로부터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도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때는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병기고(兵技攷)’에 나오는 ‘검도삼십팔편(劍道三十八篇)’이라는 기록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검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발달했는데 신라 황창랑의 ‘화랑검(本國劍)’과 중국 모원이 쓴 ‘무비지(1621년)’에 소개된 ‘조선세법(朝鮮勢法)’을 들 수 있다.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은 고대 검법의 정수로 일본에서 정립된 현대 검도의 모태가 된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는 화랑들이 월정(月庭)과 같은 일정한 수련장소에서 모여 체계적으로 격검을 수련했을 뿐만 아니라 산속이나 동굴에 들어가 극기 훈련 등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의 검기(劍器)역시 삼국끼리 또는 중국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동양 최고의 수준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검술은 고려시대까지 큰 발전을 이뤘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무를 경시하고 문을 숭상하는 시대상황과 태종의 사병철폐로 쇠퇴하게됐다. 조선시대의 검술은 일부 무반 집안과 사당패, 승려들을 통해 계승됐다.
이러한 검술은 일본으로 전파돼 오늘날 검도의 모태가 됐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지나 노부나가, 토요토미 정권 후 토쿠카와 막부를 거치면서 무사(사무라이) 계급이 성장해 무술을 발전 승계시켰다.
18세기 후반인 메이지유신 이후 폐도령이 발표되고 계급이 폐지되면서 검술이 쇠퇴기를 맞게 되지만 검을 수련하고 무사 가문을 영광으로 생각하던 이들은 계속적으로 검술을 익히고 후대에 계승할 방법을 찾아내는데 이르렀다.
그 결과 100여년전 일본에서 지금처럼 호구를 착용하고 나무로 만든 검으로 대련을 하며 정신수양까지 가미된 검도가 탄생했다.
검도에서는 심판의 판정이 절대적이며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
만약 이의가 있을 경우 선수가 직접 항의할 수 없으며 감독이 감독기를 들어 발언시간을 얻은 다음 심판장에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만약 선수가 직접 판정에 불만을 표할 경우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몰수패를 적용한다. 검도는 실력에 앞서 예의를 중시하는 무도이며 대부분 심판이 자신보다 고단자가 많기 때문에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은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검도경기에서 죽도로 타격할 수 있는 부위는 손목, 머리, 허리, 목으로 정해져 있다.
머리와 손목은 내려치고, 허리는 베고, 목은 찌르는 동작이다.
특히 충만한 기세와 바른 자세로 정확하게 쳤느냐에 따라 점수가 인정된다.
2016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 검도경기는 9월 3일과 4일 이틀동안 청주시 장애인스포츠센터와 근대5종 훈련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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