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3월의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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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의 중심에 섰던 지도자
기사입력 2019.03.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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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선생 유묵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경인통신 편집부]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손병희(1861.4.8.~1922.5.19.)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손 선생은 1861년 충북 청원(청주)에서 출생해 1882년 동학에 입문했다.

1894년 호서지방 중심의 북접(北接) 사령관인 통령(統領)에 임명돼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기수로서 활약했다.

 

선생은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국권을 수호하고, 또 회복하기 위해 민족을 계몽하는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 등 수십 개의 남녀학교를 인수·신설·운영하며 민족의 동량을 육성했다.

 

19191월에는 동경유학생의 28독립선언계획, 신한청년당 등 기독교계의 독립운동 계획을 듣고 독립선언 방식의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한 후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전개함으로써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알리고 일본의 정부와 귀족원·중의원, 조선총독부 파리강화회의의 열국의 대표에게 한국의 독립에 대한 의견서와 청원서를 보내기로 했다.

 

선생은 권동진, 오세창, 최린과 31독립운동의 골간이 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의 3대원칙에 합의하고 각 교계의 중심인사들을 규합해 갔으며,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청원서 등이 완성되자 이를 직접 검토하고 천도교계와 기독교계의 검토가 이뤄진 후, 천도교의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가 인쇄됐다.

 

1919227일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에 날인했으며, 다음날인 28일 자신의 집에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민족대표를 불러 협의해 독립선언서의 발표 장소를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변경했다.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거나 배포하면 소동이 일어날까 우려한 것이다.

 

거사일인 31일 선생은 태화관에 모인 28인과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일경에 연락해 자진 체포됐지만 선생과 다른 민족대표가 점화한 31운동은 이후 요원의 불길처럼 국내 전역으로 확산됐고 중국, 러시아, 미국 등 한국인이 살고 있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선생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뇌출혈로 가출옥했으나 1922519일 생을 마감했다.

 

선생의 유해는 서울 우이동 언덕에 안장됐으며, 1966년 민족의 얼이 깃든 탑골공원에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독립된 국가의 앞길을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경인통신 편집부 기자 igi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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