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세계가 인정한 ‘소수서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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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소수서원’을 가다

기폐지학 소이수지(旣廢之學 紹而修之)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
기사입력 2019.07.2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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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영주의 소수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사진 / 이영애 기자)

 

[경인통신=이영애 기자] 무더운 7, 장마의 끝자락에 소수서원을 찾았다.

변덕스런 장마에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우산과 모자를 번갈아 써가며 백두대간의 정기를 머금은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201976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영주의 소(이을 소)(닦을 수)서원은 사적 제55호로 지정된 있는 민족교육의 산실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외에도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논산 돈암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등 9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넓고 잘 정비된 소수서원 주차장에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양 옆으로 문이 나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어가면 영주와 인근 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팜플렛과 영주와 무섬마을을 오가는 버스 시간표가 친근감을 주고 인상적 이다.

 

1년 뒤에 발송해 준다는 느린우체통이 관심을 끈다.

이 우체통은 영주시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바로 옆에 엽서가 준비돼 있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펜을 잡게 만든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은 영주에서 가장 선비스러운(?) 장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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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순 문화해설사

 

김금순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빌리면 소수서원 입구에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은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는 의미의 학자수라 불리며 600여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킨 은행나무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매미들의 합창을 들으며 낙락장송 군락을 따라 걸어가면 오른편에 절의 위치를 알리는 높이 3.91m에 이르는 조형물인 숙수사지당간지주(보물 제59)가 서있다.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 절로 당간지주는 말 그대로 당을 매달던 깃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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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사지당간지주(보물 제59호)

 

우리나라 첫 번째 서원을 백운동 서원 이라 했는데 나라에서 인정한 교육기관으로 최초의 사액서원{오늘날 사립학교} 이다.

 

1543년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周世鵬)선생이 안향(安珦)선생의 사당을 세우고 동쪽에 백운동서원을 세웠으며,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교학을 진흥하고 사풍을 바로잡기 위해서 서원 보급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조정에 사액과 지원을 요청했고 명종은 친필로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곳인 강학당(講學堂, 보물제1403)은 사방에 툇마루가 놓여있어 학문에 정진하던 유생들이 금방이라도 우루루 몰려들어 삼삼오오 학문을 논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듯 했다.

 

문성공묘(文成公廟, 보물 제1402)는 회헌 안향선생의 호를 따라 위패를 모신 곳(사당)으로 후에 안보, 안축, 주세붕을 함께 모셨으며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하고 있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사당은 사당사()자를 사용하지만 라 하지 않고 ()’로 격을 높여 부른 것은 이례적이며, 사당문이 삼문(三門)이 아닌 단문(외문)인 것도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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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교수들의 숙소인 일신재

 

도서관인 장서각과 학장의 숙소인 직방재(直方齋)와 일반 교수들의 숙소인 일신재(日新齋) 옆으로 유생들이 공부하며 유숙하던 지금의 기숙사라 할 수 있는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는 학문의 숫자인 3을 상징해 세 칸으로 지었다.

또 공부 잘 하라는 뜻으로 건물 입면(入面)이 한자인 자형으로 지어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두 칸 물러지었으며 방 높이도 스승의 숙소보다 한자 낮춰 지었다.

 

영귀천에 도달하면 거북이 한 마리가 소백산에서 흘러나올 것으로 추측되는 부드럽고 청량감 있는 물을 선사한다.

한 표주박 가득 받아 단 숨에 마시며 더위를 날리고는 서원 후문을 지나 탁청지(濁淸池)를 걷다보면 아름드리나무가 연꽃을 바라보며 그늘을 선사한다.

 

(비취 취)(찰 한)대에서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소수박물관이 나온다. 시원하게 더위도 식히며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나면 왠지 안 먹어도 배부른 선비가 된 느낌이다.

 

이곳 순흥 땅은 아픈 역사와 전설이 있다.

단종을 사랑했던 금성대군이 유배됐던 순흥 도읍 땅, 순흥 안씨 집성촌이 단종 복위운동 실패로 모두 죽임을 당하고 사방 10여리는 개와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이곳 죽계천 일대가 핏물로 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지금도 피끝마을 이라고 불리고 있다.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자에 붉은 칠을 하고 위령제를 지냈으며, 자 위에 쓰인 白雲洞(백운동) 글씨는 퇴계 이황이 새겼다고 한다.

 

죽계천은 장마로 불어난 물줄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위에 새겨진 白雲洞 글자를 또렷하게 씻어줬다.

 

소수서원을 뒤로하며 걷는 발걸음에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들을 현대에 접목시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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