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세계문화유산 ‘영주 부석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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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영주 부석사’를 가다

국보를 5개나 간직하고 있는 천년고찰 부석사
기사입력 2019.08.0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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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석등.jpg
부석사 입구 일주문을 통해 4대 천왕이 지키는 천왕문 지나 108 돌계단을 오르면 무량수전이 나온다. (사진 / 이영애 기자)

 

[경인통신=이영애 기자]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석사를 오르다보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지만 한 곳에서 국보를 5개나 볼 수 있으니 눈이 호강한다.

 

경기언론인연합회 회원들과 갑자기 잡힌 영주 여행당일.

장맛비가 요란하게 내려 연신 밖을 내다보며 갈지 말지 고민 하던 중 먼저 출발한 회원이 있어 강행하기로 했다.

 

미뤄뒀던 도배장판을 교체한 다음 날인지라 미처 정리 못한 살림살이들을 베란다에 처박아둔 채 학생들에게 특히 교육적일거란 조언에 따라 중2(?)을 앓고 있는 아들을 설득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발했다.

 

오늘 찾아가는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로 국보 18호 무량수전 국보 19호 조사당 국보 45호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46호 조사당 벽화 국보 17호 석등과 보물 2493층 석탑 보물 220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255호 당간지주 경북 유형문화재 127호 원융 국사비 등이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절이다.

 

부석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해골물로 유명한 원효대사의 친구인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둘은 당나라에 오르는 길에 원효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당성에서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고, 의상은 유학을 다녀와 신라 문무왕16(676) 왕명으로 이곳 부석사를 창건했으며 화엄종찰로서 화엄종의 근본도량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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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무거울 수도 있는 문화재에 대해 김재수 문화관광해설사의 위트있는 설명이 머리속에 '콕콕' 박힌다. 이것이 연륜인가 보다.

 

경내로 들어서니 매미들이 합창하고 이슬비가 살짝 내려 한결 운치가 있다.

 

나이탓에 내년이면 해설도 그만둬야 한다는 김재수 문화관광해설사는 부석사 초입에서 아침에 생겨났다 저녁이 되면 사라지는 5개의 공포불’, 저기 불상처럼 보이는 공포불이 보이냐고 물었다.

공포불은 말 그대로 포사이의 공간에 나타는 불상의 형상을 띈 부처로, 극락세계를 통과하기 전에 공포불을 보았다고 하면 불심을 인정하고 무사통과 시킨다고 한다.

 

공포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 부석사에 올라 절을 많이 하고 다시 보면 보인다고 하는데,다행이 우리 일행은 모두가 공포불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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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을 지키는 천왕문

 

범종은 어디 갔나?

범종루에 범종은 없고 목어와 법고, 운판이 누각을 지키고 있는 아이러니함을 연출했다. ‘아마도 범종이 있었기에 범종루겠지!’

스님들은 새벽 3시와 저녁6시 예불시간에 천지사방에 네발 달린 짐승의 넋을 달래기 위해 법고를 두드리고, 목어는 수상세계의 생물을 위해, 운판은 구름 속을 넘나드는 날짐승을 위해 두드린다고 한다.

 

범종루는 앞에서 보면 팔작지붕, 뒤에서 보면 맞배지붕으로 국내에서 유일하다는 설명을 들으니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범종루를 지나면 진입축이 꺾이면서 무량수전 경내로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하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다.

계단위에 적당히 건물을 올려놓은 것 같은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난간 아래쪽에는 '안양문' 위쪽에는 '안양루' 라고 씌어 있어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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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 반해 써 내려간 김삿갓 시가 안양루에 걸려있다.

 

안양루에는 부석사에 반한 김삿갓이 쓴 시 한편이 걸려 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드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다네.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타고 달려온 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염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 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안양루 밑을 지나 계단을 하나씩 오르니 국보17호 석등이과 국보18호인 무량수전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부석사 입구 일주문을 통해 4대 천왕이 지키는 천왕문 지나 108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무량수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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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앞에 있는 2.97m 높이의 석등은 간결하면서도 우아했다.

4각의 아래받침돌 옆면에는 연꽃조각을 새겼으며 윗받침돌은 8각의 모양으로 연꽃잎과 봉오리가, 기둥에는 불을 밝히는 4개의 화창이 나 있고, 4면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보살입상이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반갑게 맞이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석등을 돌며 소원을 빌었을까?!’

 

석탑을 뒤로 하면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국보45아미타불을 모신 곳인 부석사의 본전인 무량수전이 웅장함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문지방이나 문창살 하나에도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 쉬고 있다니...

 

규모는 앞 칸 5,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팔작지붕(여덟팔자 모양)이며 기둥은 중간이 굵고 밑이나 위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 지는 아래부문에 불룩한 장독모양의 베흘림기둥을 하고 자태를 뽐냈다. 이곳 무량수전의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한다.

기둥에 기대서 안양루 앞으로 펼쳐진 소백산 자락을 바라보니 여기가 극락이구나!’싶다.

 

법당 안에는 진흙으로 만든 2.78m의 근엄하고 온화한 모습을 지닌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 일반 사찰에서처럼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서편에서 동편을 향해 불단 위에 모셔져 있었고, 지그시 이래를 응시한 불상 뒤로 광배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 했다.

    

무량수전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당나라 선묘낭자가 변한 것이라는 전설의 거대한 바위가 부석(뜰 부)이라는 이름 두 글자를 새긴 채 암벽 밑에 내가 부석이요~’하고 떡하니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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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돌석 자에 점이 찍혀 있다.

 

해설사는 "떠서 가라앉지 않던 부석의 석()자에 점하나를 찍어서 가라앉히지 않았을까. 믿거나 말거나 하다"며 웃음을 줬다.

 

왜 부석사일까? ‘부석에 대해 궁금증을 안고 안내판을 읽어 봤다.

부석(浮石, Rock floating in the air, 일명 뜬 바위) 은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펴기 위해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많은 이교도 들이 방해해 선묘 신룡이 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물리쳐 이 돌을 부석이라, 절은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들임을 알 수 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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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

 

또 국보나 유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작 돌은 작은 돌대로 큰 돌은 큰 돌대로 무를 자르듯 깔끔하게 잘 쌓여진 아름다운 석단은 1300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무량수전을 지키며, 긴 세월을 이어오고 있었다.

 

무량수전 동쪽으로 조금 위쪽을 보면 보물 제249삼층석탑이 있다.

526cm의 큰 키에 웅장한 모습을 한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웠으며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고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으로 넓고 안정돼 보였다.

사람들은 이탑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탑이란 뜻으로 통일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금 더 오르면 선묘를 모신 작고 기단도 없이 초라한 선묘각이 나온다.

이곳의 주인공인 선묘낭자는 신라문무왕 1년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알게 됐으며, 의상이 깨달음을 얻고 귀국길에 오르자 선묘는 몸을 바다에 던져 용으로 변신해 의상대사가 탄 배를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했다는 애틋한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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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의상대사 서당을 지키는 '선비화'가 처마 밑 철망에 갖혀있다.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의상대사를 모신 국보 제19조사당이 나온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인 조사당의 한쪽 처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선비화(禪扉花)’라는 골담초가 철장에서 보호되고 있다.

이 나무는 의상대사의 지팡이 나무라고도 불린다.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으며 이것이 살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는 전설의 선비화는 아직도 이슬이나 빗물도 맞지 않는 처마 아래서 잎이 나고 봄이면 노란 꽃이 피고 있다.

선비화의 신비함에 놀란 우리들의 욕심이 이렇게 철망에 갖히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이렇게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눈이 호강했어도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일행과 함께하다 보니 다음 일정에 쫓겨 미처 보지 못한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소백산 너머로 지는 석양,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단풍~ 다음에 꼭 보고 싶다!

 

좌청룡 우백호라고 맥이 확실한, 많은 인물을 배출한 이곳에서 호흡 조정만 잘해도 기를 받을 수 있으니 위로 올라가며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소백과 태백 양백지간의 기를 듬뿍 느끼고 가셔라던 김채수 문화관광해설사 님의 말을 뒤로하며 내려오려니 길게 늘어트린 하얀 턱수염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하늘을 나는 용머리에 올라타 배웅하는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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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에서 소백산 자락의 풍경에 감탄하며 다시 방문하자고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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