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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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통신=이영애 기자] 미군과 북한군의 최초 교전이 벌어졌던 195575일 죽미령에 비가 내렸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의 철모와 가슴을 타고 흘렀다.

마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비운을 암시라도 하듯 가슴에서 떨어진 비는 죽미령 고개를 흥건히 적셨다이날 새벽 3시 명에 따라 방어 진지에 도착해 부대를 배치한 스미스 부대는 이렇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최후를 맞았다하지만 자유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이 땅을 찾은 미군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역사는 기억한다.

 

<교전일지>

아침 7-수원 가까이에서 북한군 움직임 포착

아침 8- 8대의 북한전차 진격

아침 818-미군 2문의 포가 두 발의 고폭탄 발사

오전 9-미군과 북한군의 최초 접전 일단락

오전 10- 북한군 4사단 주력 병력, 전차 3대 진격

오전 1145-양측 보병 교전 시작

오후 1-미군 실탄 바닥, 미군 150명 전사, 포병대대 소속 장교 5병 사 26명 실종, 스미스 부대 철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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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전투(Battle of Osan)195575일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시키고 2차 공세를 개시하자 미국 지상군 선발대가 최초로 출동해 싸운 전투다.

 

미국 장병 1명이 M1 카빈 실탄 120발과 C-레이션 이틀 분을 갖고 있었으며 이 부대가 바로 대대장인 찰스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딴 스미스 부대(Task Force Smith).

스미스는 과달카날 전투에서도 대대를 지휘하던 경험이 많은 장교였다.

 

한국전쟁 최초의 미군과 북한군 교전

73일 북한군은 한강을 넘어 남하하기 시작했고 스미스 부대는 75일 오산 북쪽 죽미령에서 북한군과의 첫 교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75일 새벽 3시경 방어 진지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는 도로와 철로 사이의 공간에 도로를 포함한 좌측 능선에 B 중대를, 철로 좌측편에 있는 진지 내 우측 고지에는 C 중대를 배치하고 75mm 무반동총 1정씩을 각 중대지역에 배치시켰으며 4.2인치 박격포는 B 중대 후방 400야드 지점에 예비로 배치했다.

52포병대대장 밀러 0. 페리 중령은 보병진지 후방 약 2000야드 떨어진 지점에 5문의 포를 배치하고 1문의 포는 6발의 대전차 포탄을 줘서 보병과 포병진지 중간 언덕에 배치했다.

비오는 75일 아침 오산 북방 죽미령 지역에는 540명의 미군(보병장교 17, 389명과 포병장교 9명과 병 125)이 북한군의 진격을 기다리면서 전투식량으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아침이었지만 7시가 조금 지나자 수원 가까이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나자 똑똑히 식별할 수 있는 전차 대열이 기다리는 미군 병사들을 향해 오고 있었고 아침 8시경 8대의 전차가 한 묶음이 돼 굴러오고 있었다.

전방관측 장교는 후방의 포병 진지에 사격임무를 요청했다.

8182문의 포가 두 발의 고폭탄을 뿜어냈다. 사거리 조정을 마친 포가 계속 포탄을 뿜어냈지만 북한군 전차는 멈추지 않고 굴러오고 있었다.

75mm 무반동총을 감추고 있던 스미스 중령은 적 전차가 700 야드 내에 들어오자 사격 명령을 하달하고 2.36인치 바주카포도 쏘아댔다.

전방에 추진된 포도 대전차포탄을 쏘아 댔으며 결국 북한군 전차 2대가 멈췄다.

한 대가 불이 나서 타자, 3명의 승무원이 나왔고 세 번째 나온 북한군은 미군 기관총 부사수를 쏘아 맞췄다.

최초의 미군 전사자가 한국 전선에서 나왔다.

이들 3명의 북한군은 미군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세 번째 북한군 전차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남쪽으로 향하고 뒤를 이어 모두 33대의 전차가 보병 진지를 지나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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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보병의 접전, 포병과의 연락 두절

스미스 부대는 대전차 포탄이 떨어지고 나머지 화기는 북한군 전차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한국 전선에서 미군과 북한군의 최초 접전은 이같이 진행돼 오전 9시경 일단 끝났다.

보병 진지를 지나가는 북한군 전차를 보낸 미군들은 후방의 포병에게 적 탱크가 보병 진지를 지나갔다고 알려 줬다.

이 소식을 들은 포병은 대전차 포탄이 아닌 고폭탄으로 탱크에 직접 사격을 실시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105mm 포가 적 전차의 궤도를 명중했다. 그러자 북한군 전차는 멈췄으나 밀러 0. 페리 52포병대대장이 그 안에서 나온 북한군 2명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결국 사망했다.

33대의 적 전차는 스미스 부대의 포병 진지까지 통과하면서 4대가 파괴되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되고 3대가 부서지는 피해를 입었다. 나머지는 오산을 향해 남진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전차가 지나간 죽미령의 미군 진지에는 다시금 불안한 정적이 찾아왔다.

이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갔을까? 스미스 중령은 수원 가까이에서 긴 행렬의 트럭과 보병이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비가 끈질기게 쏟아지는 가운데 내려오는 적 보병의 행렬은 약 6마일(10 km) 정도였다. 3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접근하는 이 보병 행렬은 한 시간 후면 미군의 방어 진지에 도달할 것으로 판단됐는데 이는 북한군 4사단의 주력 부대였다.

북한군의 호송트럭이 1000야드 전방에 접근했을 때 박격포, Cal 50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적 트럭에 불이 붙고 어떤 적군은 공중에 튀어 오르기도 했다. 3대의 적 전차가 접근해 전차포와 기관총을 쏘기 시작했다.

북한군들은 트럭에서 내려 산개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계는 11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측 보병의 접전이 시작됐다.

이로부터 3시간 동안 싸운 스미스 부대는 포병과의 연락도 이미 되지 않았고 소총탄도 다 떨어져가서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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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부대 후퇴, 540개의 돌로 애도의 탑 쌓아

스미스 중령은 우측에 있는 C중대를 먼저 철수시켰다. 그러나 나중에 철수한 B중대의 2소대는 철수명령도 전달되지 않을 정도로 다급하게 철수를 서둘렀다.

부상이 경미한 병사들은 본대와 합류해서 철수 했지만 중상자들은 어쩔 도리가 없이 전쟁터에 남겨지게 됐고 그 후 상당수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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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 대대장과 합류한 스미스 중령은 잔류병을 끌고 안성을 통해서 76일 천안에 도착했고 다행히 북한군은 미군이 버린 무기와 탄약, 전투식량에 만족했던지 스미스 부대를 추격하지 않았다.

철수 명령을 제대로 받지 못한 B중대원은 며칠 후에 오산에 도착하고 어떤 병사는 동해안, 어떤 병사는 서해안에서 조각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기도 했다.

540명의 스미스 부대원 중에서 150명이 전사하고 포병대대 소속 장교 5명과 병사 26명은 실종되는 등 최초로 투입된 미군 부대의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북한군 4사단도 42명의 전사자와 85명의 부상자, 전차 4대를 손실했다.

최초 접전 치고는 쌍방 간에 피해가 많았다. 스미스 부대는 이와 같이 많은 사상실종자를 내면서 적의 진격을 약 7시간 지체시켰던 것이다.

7시간을 벌기 위한 인명 피해와 빼앗긴 지역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6시간 15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북한이 재정비 하는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열흘 정도의 시간을 벌어주며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급하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스탈린에게 병력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미군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던 김일성은 스미스 부대의 참전으로 크게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후의 죽미령은 말이 없다.

슬프다는 말도, 그때 그 병사들의 한 맺힌 절규도, 죽미령은 입을 열지 않는다.

1955년 생존한 스미스 부대원들은 540명의 참전자를 뜻하는 의미로 경기도 오산시 죽미령에 540개의 돌을 쌓아 돌탑을 만들었으며 매년 이곳에서 추도식을 진행해 왔다.

이후 신 초전 기념비가 건립됐으며, 오산 지역 내 주민들에게 일명 초전비로 알려졌다.

 

오산시는 매년 75일 이면 이곳에서 미(美) 스미스특수임무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을 열고 있다.

 

유엔군초전기념관 & 스미스 평화관

오산시는 죽미령 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해 지난 2013년 죽미령 일원에 현충시설이자 공립박물관인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건립했으며, 기념관을 포함한 134000부지에 스미스평화관, 거울연못, 워터 커튼게이트, 각종 조형물, 대형 놀이터, 평화마당 등으로 구성된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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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6·25 전쟁당시 낯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스미스부대 장병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역사교육시설로, 스미스평화관 1층은 스미스부대 참전 당시 기록을 담은 기획전시실 유엔군 첫전투의 흔적을 간직하다가 들어섰다.

2층에는 죽미령 전투 상황을 재연한 상설전시실과 블랙이글스·유라시아횡단열차 등을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체험해보는 시설이 갖춰졌고, 3층 상설전시실에는 직접 스미스부대원이 되어 참전 상황을 경험하는 VR 시설과 어린이 체험실 등이 있다.

 

195075230분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시계는 멈췄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시계는 영원히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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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고지 ‘죽미령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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