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 독산성에서 고대 유물 발견통일신라·고려시대 기와편, 조선시대 분청사기편과 백자편 등 다양하게 출토
[경인통신=이영애 기자] 권율장군의 지혜가 살아있는 ‘오산 독산성’에서 조선시대 축대, 건물지, 집수시설 등 7기의 유구가 발견됐다. 경기도 오산시(시장 곽상욱)는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를 받아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재)중부고고학연구소(소장 김권중), 한신대학교 박물관(관장 이남규)과 함께발굴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오산 독산성은 삼국시대(백제)에 처음으로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이 쌀로 말을 씻기는 일명 ‘세마병법’의 지혜로 왜군을 물리쳤던 기록이 남아 있는 관방유적으로서 그 역사ㆍ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40호로 지정돼 있다. 오산 독산성에 대한 학술조사는 1999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2001년과 2014년 단발적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2017년부터는 학술조사계획과 복원정비와 활용방안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올해부터 연차 학술발굴조사를 시작했다. 올해 조사는 남문 쪽에서 남쪽 암문에 이르는 구간을 대상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했으며 확인된 유구를 토대로 남문 내측의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조사결과 조선시대 축대, 건물지, 집수시설(성(城) 내에 물을 모으는 시설) 등이 확인돼 그 당시 독산성을 점유하고 운영했던 세력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 축대는 모두 4열이 조사됐는데 경사면에서 건물터를 마련하기 위한 대지조성의 방법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경사진 기반암 상면 일정부분에 성토를 하고 석축하면서 동시에 뒤채움(성(城) 내에 물을 모으는 시설)해 평탄대지를 조성했다. 대지 상면에는 건물터인 석렬과 항아리를 넣었던 수혈이 남아있다. 또 대지 뒤쪽으로 2~3단의 또 다른 석축이 있으며 이 석축은 경사진 기반암 위에 석축하고 뒤채움해 조성했다. 상면에는 잔자갈을 깐 대지의 일부가 확인됐으며 이 역시 건물을 세우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석축 아래의 평탄지에서는 집수시설이 확인됐다. 평면형태가 네모꼴(方形) 또는 사다리꼴(梯形)로 판석과 모난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주변에는 인공물길(導水路)을 조성했다. 집수시설은 이번 조사지역 경계와 맞물려 있어 전체 규모와 형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추가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기와편과 토기편, 고려시대 청자편과 와당, 기와편, 조선시대 분청사기편과 백자편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으며 총통(銃筒)이나 대완구(大碗口)(조선시대에 사용(使用)하던 화포(火砲)의 하나. 화약(火藥)을 넣고 쇠나 돌로 만든 둥근 탄환(彈丸)을 넣어 내쏨. 그 크기에 따라 대완구ㆍ중완구ㆍ소완구의 세 가지가 있었음) 같은 대구경 포에서 발사하는 단석(團石)(화강암을 쪼아서 둥글게 깎아 만든 돌이며, 대/중/소 완구(碗口)에 넣어서 발사함)이 출토됐다. 이번 조사는 독산성 전체 면적 중 극히 일부 면적에 대한 발굴조사로서 독산성 전체에 대한 축조방법과 축조시기, 변화양상, 내부시설의 종류와 성격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까지 독산성이 운용됐던 흔적을 확인하고 출토유물과 비교했을 때 조선시대보다 선대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오산시와 조사기관은 오는 15일 오후 2시 독산성 세마대지 현장에서 연구자들과 시민들을 위한 ‘학술자문회의 및 현장공개 설명회’를 개최해 연구자료 제공과 지역 시민들에게 우리 문화재의 중요한 가치를 알리고 발굴성과를 공유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경인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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