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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화재참사 12주기 담화문 발표 녹취록

이영애 기자 | 기사입력 2015/02/17 [17:24]

대구지하철화재참사 12주기 담화문 발표 녹취록

이영애 기자 | 입력 : 2015/02/17 [17:24]
대구지하철화재참사 12주기 담화문 발표 녹취록이 공개됐다.
(시장) 사고 나고 12년 만에 끌어오던 2.18안전문화재단 설립과 관련해서 일전에 유족대표, 부상자대표, 재단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시민단체대표들과 대구시가 큰 틀에서 합의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가 미래가 나아가는 것은 과거에 대한 성찰적 반성과 화해 없이는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2.18지하철참사로 인해서 빚어졌던 우리 대구사회의 혼란을 성찰적 반성과 화해라는 차원에서 극복하고 2.18안전문화재단이 설립하게 된 것은 참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계기로 이제는 우리가 단순히 사고에 대한 추모와 기억이 아니라 대구를 가장 안전한 도시, 안전과 생명의 도시로 나아가는데 박차를 가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질문) 그동안 잘 진행이 안돼 왔는데 이번에 재단설립에 합의하게된 구체적인 이유나 배경이 있는지?
 
(시장) 서로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유족들 서로간에도 불신이 있었고 특히 유가족들, 부상자단체들과 대구시 차원에 서로 불신의 골이 깊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시장으로 이 문제를 풀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줬고 그 과정에서 그 분들을 신뢰하게 됐다.
시 입장에서도 유족들과 부상자들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면서 합의로 갈수 있었다.
 
(질문) 공익인사 4명 윤곽이 잡힌 것 있는지?
 
(안전총괄과장) 2010년도 당초 재단을 설립할 때 김태일 영남대 교수, YMCA 김경민 사무총장, 신수태 당시 추모사업 추진위원회에 관여 했던 사람, 당시에 시의원 했던 강재형 시의원 등 4명이다.
 
(질문) 신수태씨는 직함이 따로 있으신지?
 
(안전총괄과장) 과거에 법원에 가사조정관으로 활동했고 2003년 화재사고 이후에 추모사업추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질문) 정치적인 성향의 사람은 배제키로 한 것인지  아니면 상관없는 것인지?
 
(시장) 정치일선에 있는 사람들은 배제가 되는 것입니다.
 
(질문) 김태일 교수 같은 경우에는 한 쪽 다리를 걸쳐 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장) 그것은 정치인이라기보다 그동안 이 재단설립과 관련해서 시민사회와 유족들을 연결시켜 주는 그런 재단이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정치인으로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질문)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분은 몇 년 전에는 정치 일선에서 발을 빼겠다 해놓고 뱄다 담갔다 계속 그러고 있습니다.
 
(시장) 이 재단을 설립할 때까지 저는 김태일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대구시와 유족들 사이에서, 또 유족들간의 갈등이 있는 사이에서 그것을 조율하고 조정해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김태일 교수가 하셨습니다.
오히려 재단이 설립되고 재단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서로간의 갈등이 아니라 상생, 화해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데 역할을 하실 것이라 믿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정치에 출마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재단 설립 후 대구시의 역할은?
 
(시장) 대구시는 이 재단이 설립기금이 국민성금임. 설립기금인 국민성금이 제대로 그 재단의 목적에 맞게 잘 쓸 수 있는지 한편으로 감독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재단이 108억이라는 기금의 이자수익 갖고는 재단이 운영되지 않으므로 재단의 목적에 맞는 목적사업을 운용할 수 있도록 5년 정도는 재원도 지원해 드리고 사업과 관련해서도 같이 협의하고 상의하고 이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질문) 5년간 지원 금액은 얼마정도?
 
(시장) 그 부분은 아직 얼마다라고 책정할 수 없습니다.
사업에 따라 책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간 얼마를 주고 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질문) 감사 두 분은 어디서 선임하는지?
 
(안전총괄과장) 한 분은 김현익 변호사라고 자체에서 선임돼 있고 정관에 나머지 한 명은 대구광역시에 추천토록 정관에 돼 있습니다.
 
(시장) 재단하나 설립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저는 오늘 이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계속 갈등했던 유족들과 대구시, 유족간에도 갈등과 분열이 심했습니다.
추모사업 등을 하기 위한 재단 하나도 발족시키지 못하고 12년째 왔습니다. 그 사이에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많이 지원을 했고 당사자들이 모두가 자기를 양보하면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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