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김복순씨(여․65, 가명)는 6개월 전 남편이 췌장암 선고를 받고 한 달 만에 사망하는 슬픔을 겪었다. 김씨는 평소 재정문제와 집안일을 모두 남편에게 의지했기 때문에 남편을 잃은 상실감 외에도 앞으로 혼자 살아갈 일이 걱정이었다. 김씨가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지만 가족들은 사별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으로 여기고 치료를 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 증세가 더욱 심해지던 김씨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사례2] 박중운씨(70, 가명)는 1년 전 금슬이 좋던 아내를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잃고 외로워했다. 아내가 유일한 사회와의 연결고리였던 박씨는 이후 사람들과의 만남도 갖지 않고 혼자 생활했다. 자녀들이 박씨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했지만 박씨는 고인과 함께 지낸 집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가족들은 이를 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박씨는 1년 뒤 아내의 기일에 자살했다. 위의 두 경우들은 노인들이 갑작스런 배우자 상실로 인한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이나 자살이라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흔히 배우자를 잃는 고통을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이라고 표현한다. 본래는 배우자와의 사별이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는 은유적인 표현이지만 최근 연구결과들에서 배우자와의 사별이 실제로 노인들의 심혈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영국의 런던 성 조지대학교의 샤와 캐리 연구팀은 예측되지 않은 갑작스런 배우자와의 사별이 노인의 사망률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는 갑작스럽게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들은 배우자를 사별하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사별 후 1년 내에 사망할 위험이 1.61배 높았다. 또 만성질환으로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들은 사별하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사망 위험이 1.21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팀의 후속 연구에서도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사별 후 30일 내에 심근경색을 일으킬 위험이 2.14배, 뇌졸중을 일으킬 위험은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별 후 90일 내에는 심근경색을 제외한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2.2배, 폐 색전증 위험이 2.37배 높았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통해 배우자와의 사별이 노인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심혈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사망률을 증가시킨다고 보고했다. 이 결과들은 2013년 ‘미국 공공보건저널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과 2014년 ‘미국의학협회 내과학회지(JAMA Internal Medicine)’에 발표됐다. 특히 소규모 실험군을 대상으로 진행된 기존 연구들과 달리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통해 신뢰도를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순환기내과 한성우 교수는 “분노 표출이나 심각한 불안 증세는 심박수와 혈압을 증가시키고 혈관을 경직시키며 혈액의 응고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심장마비의 위험을 높인다”고 말했다. 요즘 노인 인구가 급속한 속도로 증가하며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정신적인 건강도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만큼,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의 정신건강을 파악하고 올바른 대처법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별 후 겪게 되는 애도의 단계 사별에 대한 고통스런 반응을 애도라고 한다. 이는 고인에게 정신적으로 결합돼 있는 애착을 서서히 거두면서 고인의 죽음을 수용하고 고통을 해소하며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욱 교수는 “사별 후 애도 과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크스와 호로비츠 모델에 의하면 정상적인 애도단계는 크게 3단계로 나타난다. 1단계로는 멍하고 당황스러운 갑작스런 ‘충격 단계’다. 이때는 비현실감과 부정, 울음 등의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2단계는 고인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항의 단계’다. 분노, 슬픔, 불면, 식욕저하, 피로, 죄책감, 고인에 대한 집착, 의욕저하의 반응이 생길 수 있다. 3단계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재구성 단계’다. 1, 2단계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사라지고 과거 슬픔과 기쁨 등 고인의 상을 내재화하고 즐거움을 찾는다. 또 과거의 역할을 회복하고 새로운 대인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사별 반응은 개인 또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일부 증상들은 몇 년 또는 평생 나타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급성기의 고통은 몇 달 내로 점차 해소되고 차차 현 상황에 적응하면서 나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노인에게 배우자 사별의 의미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은 애도반응을 겪는 것 외에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변화에 매우 힘들어 할 수 있다. 먼저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장기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공유하고 공감하며 같이 생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방식으로 살게 된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해도 혼자 먹을 것만 해야 하고 관리비와 세금 등을 내며 처음으로 집안 재정을 맡게 될 수 있다. 배우자가 빠진 새로운 인간관계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은 사별한 노인이 배우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려는 여지를 주지 않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사별 후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먼저 고인에 대한 말을 많이 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한다. 사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겪게 하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정상적인 애도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울 때는 소리 내서 울 수 있도록 한다. 둘째로 믿을 만한 가족, 친구, 지인들로 구성된 지지체계와 감정을 공유하도록 한다. 우울,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을 공유하며 공통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자조모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셋째, 고인과 관련된 기념일과 기일에는 고인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도록 한다. 고인에게 편지를 쓰거나 고인과 관계가 있던 사람을 만나 좋은 추억을 공감할 수도 있다. 넷째, 중요하고 복잡한 재정적, 행정적 문제에 대한 결정은 혼자서 급하게 하지 말고 지지체계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새로운 환경과 대인관계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해야 하며 새로운 대인 관계를 맺을 준비가 필요하다.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의 위험증상 다음과 같은 위험환경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면 예방적 차원에서 병원 방문을 권고할 수 있다. 1. 주요 우울증의 과거력이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2. 고인에게 의존도가 심해 사별 후 혼자만 지내는 경우 (고인이 유일한 사회적 연결고리인 경우에 해당) 3. 배우자가 자살하거나, 살해를 당했을 경우 4. 고통스러운 사별이 반복되는 경우 (배우자 외의 가족,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들의 반복된 사별이 해당) 5. 가족,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 등의 사회적 지지체계가 약하거나 없는 경우 아래와 같이 비정상적인 애도반응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 전문의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 1. 사별 후에 애도반응이 지나치게 강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감소되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 2. 죄책감이 지속되는 경우 (사망 당시 고인과 유족이 취했던 행동과 관련된 일시적인 죄책감은 제외) 3. 삶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지속되는 경우 (고인의 기억에 관련된 슬픔이 아닌 자기비난, 경멸, 삶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해당) 4. 지속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 (자신이 죽는 게 나았다든지 고인과 같이 떠났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고인과 관련된 일시적인 자살 생각은 제외) 5. 자살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거나 기도한 경우 6. 환각이 지속되는 경우 (스쳐가는 고인의 음성을 듣거나 고인의 모습을 일시적으로 보는 것은 제외) 7. 고인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등 망상이 지속되는 경우 8. 동작이나 사고가 느려지는 등 심한 정신운동성 지체가 지속되는 경우 9. 일상생활 또는 사회적 기능 장애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욱 교수는 “노인들이 사별 후 초기에는 정상적인 애도반응을 보여도 사별로 인해 주요 우울증이 유발되거나 악화될 수 있으므로 가족들의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경인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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