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2023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을 공유하는 신진작가를 발굴하여 소개하는 프로그램《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을 2023년 8월 15일부터 시작
[경인통신]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는 2023년 8월 15일부터 12월 3일까지 라재혁, 한재석, 오로민경, 원우리, 조호영, 그레이코드, 지인 여섯 명(팀)의 작가와 함께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을 선보인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는 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을 공유하는 신진작가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은 전시 형식의 실험이자 미술관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시도로 기획됐다. 백남준아트센터 곳곳에서 백남준의 시그널을 증폭시키는 동시대 작가들의 계주는 미술관 뮤지엄숍, 카페테리아에서부터 전시장 한쪽의 창가와 랜덤 액세스 홀까지 각자 다른 시차로 이어지며 전시의 틈새에 개입하거나 충돌하며 생성됐다가 사라진다. ‘랜덤 액세스’라는 프로젝트의 명칭은 백남준이 자신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1963)에서 선보였던 동명의 작품에서 비롯했다. 〈랜덤 액세스〉는 마그네틱 오디오테이프를 릴케이스 밖으로 꺼내 벽에 임의로 붙이고, 관객이 마그네틱 재생헤드로 자유롭게 테이프를 긁어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랜덤 액세스〉에서 찾을 수 있는 즉흥성, 비결정성, 상호작용, 참여 등을 키워드 삼아 백남준의 예술을 동시대 작가들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한 전시를 선보여왔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미술관이 백남준의 실험 정신과 현대예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을 이어간다. 신예들이 제시하는 미술관의 활용 방식은 전시의 또 다른 이름들을 발견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의 시작을 여는 라재혁은 뮤지엄숍과 카페테리아에서 《나로부터 몇 인치 떨어져서》(8.15-9.10)를 소리 설치 작품으로 선보인다. 이 전시에서는 일상 공간에서 작품 감상을 예상하지 않은 관객과 소리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작가가 설계한 소리는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소리는 주변 소음과 함께 존재하고 소음의 수준이 일정한 크기를 넘어서면 변하기 때문이다. 소음으로 소리 인지를 확장하는 ‘차폐(遮蔽)’라는 개념은 숨김을 통해서 다른 한쪽을 드러나게 하는 원리에 근거한다. 라재혁은 이 차폐 현상을 작곡의 재료로 삼아 음악과 일상의 경계에서 실험하고, 곡의 연주를 설계한 작곡자와 실제로 연주를 감상하는 관객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상호작용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한재석은 백남준 특별전 《트랜스미션: 너에게 닿기를》이 전시 중인 제2전시실에 소리 설치 《센트럴 도그마》(8.31-9.24)로 개입한다. 스피커를 수집하고 제작하면서 음향 출력 장치와 소리의 물리적 성질을 탐구해온 작가는 스피커, 금속 막대, 전선, 전구 등 다양한 전자기기와 사물을 사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전기 신호를 음파로 변환하는 스피커 장치는 평소 지각하기 어려운 피드백 고리를 빛으로, 진동으로 변환하여 전시 공간에 오롯이 드러낸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저주파 소리는 전시 공간의 다른 요소들과 뒤엉키고 섞이듯 유영하며 빛을 내기도 하고 꺼뜨리기도 한다. 입력과 출력, 수신과 발신 등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서 피드백의 원리를 소리 설치로 구현하는 작가는 전시 공간에서 빛과 소리 요소를 극대화하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관객과 직접 만날 예정이다. 소리를 듣는 경험에 주목해온 작가 오로민경은 미술관에서 보는 경험을 듣는 감각으로 전환하는 소리 설치 《빛을 전하는 시간》(9.19-12.3)을 선보인다. 푸른 뒷동산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는 2층 전시실 창가에 놓인 것은 벤치와 헤드셋뿐이다. 헤드셋에서 들리는 몇 사람의 음성은 해 질 무렵 장애인과 비장애인, 서로 다른 몸의 친구들이 만나 시간의 풍경과 빛에 대해 나누는 대화이다. 이는 작가가 사전 워크숍으로 청취한 다양한 감상 방식의 총합이다. 작가는 미술관에서 시각을 중심으로 한 작품 감상에 더해,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작품을 경험하는 방식들에 주목하며 전시 뿐 아니라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백남준의 대형 설치 〈트랜스미션 타워〉의 레이저와 네온, 그리고 자연의 빛에 대해 나눈 감각의 대화들을 들으며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작품과 풍경을 마주하기를 제안한다. 원우리의 전시 《소리 넓히기》(9.26-10.22)는 2층 전시장 안쪽 블랙박스에서 마주하게 된다. 원우리는 작곡을 위해 음(音)재료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소리를 듣는 정도가 같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인공와우 사용자와 협업한 〈와우〉 연작을 시작했다. 2019년 소리 인지 확장을 위한 연구 〈와우 로그〉, 소리 감정 연구를 담고 있는 〈와우 스텝〉, 그리고 난청인과 건청인의 교류를 위한 공연 〈와우 플로〉가 있다. 이번 전시는 인공와우 사용자의 청감 훈련 연구를 바탕으로 작곡한 음악을 재생하고 그 소리 데이터를 시각 데이터로 전환한 영상을 함께 선보인다. ‘소리 넓히기’는 난청인의 소리 인지 영역을 확장하도록 돕기 위해 작곡된 음악이다. 이 음악은 음의 높이, 거리, 길이와 같은 청감에 필요한 요소들로 선율을 이루고, 화성보다는 템포와 리듬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원우리는 인공와우 사용자와 나누었던 음악적 교류의 과정인 이 음악을 ‘소리 주머니’라는 스피커에 담아 전시장으로 가져온다. 조호영의 전시 《한 뙈기의 땅》(9.26-10.22)은 미술관 1층 랜덤 액세스 홀에서 선보인다. 작가는 랜덤 액세스 홀의 바닥을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설치 구조물로 채워 넣는다. 장치된 바닥 위에 올라선 관객은 수직·수평의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며 몸의 균형을 잡아갈 때 사용하지 않던 신체의 감각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관객이 움직이는 방향이 바닥의 움직이는 힘과 합해 균형을 이룰 때,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면적이 된다. 즉, 한 뙈기의 땅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운동 에너지의 평형상태를 이루는 관계가 마치 하나의 생명과 같아서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향에서 지속적인 에너지를 투입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함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사운드-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으로도 활동하는 그레이코드(조태복)와 지인(정진희)은 백남준 특별전 《트랜스미션: 너에게 닿기를》이 전시 중인 제2전시실에 또 하나의 전시 《WIWR: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약하게 반향하는》(11.7-12.3)을 열어 응답한다. 제목이 지시하듯 ‘상호작용’에 주목한 소리 설치는 전시 공간에 놓인 여러 개의 스피커가 하나의 공통된 시스템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잔향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작업에서는 전시 공간에 이미 들어찬 소음, 관객들이 나누는 대화, 발걸음 소리도 재료가 된다. 백남준의 비디오에서부터 전시장의 현장 소음까지 반영한 설치와 라이브 퍼포먼스는 청각뿐 아니라 시각, 몸의 경험에 관여하며 듣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자극하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백남준아트센터 곳곳에서 백남준의 시그널을 증폭시키는 동시대 작가들의 계주는 마치 소리의 성질처럼 벽과 층계를 넘어 퍼지고, 사라지고, 이어진다. 시각은 물론 청각, 몸으로 작품을 감각하기를 제안하는 작가들은 전시 공간은 물론 뮤지엄숍, 카페테리아, 로비의 랜덤 액세스 홀에서 관객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다린다. 라재혁, 한재석, 오로민경, 원우리, 조호영, 그레이코드, 지인 여섯 명(팀)의 작가와 함께 12월 3일까지 이어가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에 많은 관심을 바란다. <저작권자 ⓒ 경인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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