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통신

(3월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석호필) 박사

1889년 3월 15일~1970년 4월 12일, 건국훈장 독립장

이영애기자 | 기사입력 2016/03/06 [18:39]

(3월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석호필) 박사

1889년 3월 15일~1970년 4월 12일, 건국훈장 독립장
이영애기자 | 입력 : 2016/03/0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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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촌리는 어여쁜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어둡고 잔인한 일본군의 손자국이 아름다운 경관에 짖게 배겨 있었다. 좁은 골목길들은 잿더미로 쌓여있고 42채의 오두막집 중에서 8채만이 남아 있었다. 몇몇 나이든 여성들은 자신의 몇 안 되는 물건들 옆에 앉아 있었는데 슬픔이 그들을 압도했고 그들은 축 늘어진 채로 무감각했다. 그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8채 가량의 집이 남아 있었고 나머지 31채와 교회는 바닥까지 모두 불에 타 버렸다”-스코필드의 수촌리, 제암리 학살 보고서 -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石虎弼, 1889~1970) 박사는 1889315일 영국 워릭셔(Warwickshire) 럭비(Rugby)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과정까지 영국에서 마치고, 농장 노동자로 일했다.
1907년 홀로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농장에서 일하면서 토론토대학교 온타리오 수의과 대학에 들어가 세균학을 전공했다.
1911년 그 대학에서 세균학 박사학위를 받고, 1913년 피아노를 전공한 앨리스(Alice)와 결혼했다. 1
914년부터 모교에서 세균학을 강의했다.
스코필드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1611월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로서 부인과 함께 내한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스코필드는 그 때부터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하에 있던 한국인을 마음으로부터 동정하고, 사랑했다.
19193월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기록으로 남기며, 일제의 비인도적 탄압에 맞서 싸웠다.
특히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와 수촌리를 직접 방문해 참혹한 방화 학살 현장을 촬영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수촌리는 3월 말 4월 초 수원지역(현재 화성지역) 만세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이 46일 새벽에 마을에 들어와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불을 끄려는 사람들을 총칼로 제지해 한 사람이 죽고 여러 사람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제암리는 발안 장날 만세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415일 오후 일본 군경이 마을에 들어가 15세 이상 남자를 예배당에 모으고, 총을 쏘고 불을 질러 마을 전체를 불태워 부녀자 2명을 포함한 23명을 학살하고 이웃 고주리에서 천도교인 6명을 더 총살한 사건이다.
스코필드는 417일 제암리교회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인 18일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와 팔이 불편한 몸으로 자신의 자전거를 가지고 9시 열차편으로 수원까지 가서 다시 자전거로 사건 현장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조사했으며, 같은 날 오후 수촌리도 방문해 부상자들을 도왔다.
스코필드는 같은 해 5월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가 유관순 등 투옥된 독립운동가를 면회한 후 조선총독부에 고문과 비인도적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으며 한국의 상황에 대해 각국 언론에 동정과 지지를 호소했다.
박사는 8월 일본으로 건너가 극동 선교사 8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했으며 하라 수상을 면담해 일제의 동화정책과 민족 차별을 철폐하고 한국인에 대한 강압과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일제의 감시는 물론 살해 위협까지 받다가 19204월 한국을 떠나게 됐다.
캐나다로 돌아간 뒤에도 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한국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고 일제의 식민정책을 비판했다.
19588월 국빈 자격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스코필드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1968년 정부는 캐나다인으로 우리 겨레의 자주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스코필드 박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한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공적으로 소위 민족대표 34으로 불리며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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