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박동진’해군 일등병조(현재 중사)를 8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50년 8월 계속해서 남침하던 북한군은 연안 가까이에 있는 일부 도서를 점령해 무고한 주민을 학살하고 아군 함정의 동정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활용했다. 이에 해군은 인천 상륙에 필요한 정보수집과 교두보 확보를 위해 각 함정의 승조원들로 구성된 상륙부대(육전대)를 편성,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 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덕적도의 위치가 인천항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인천 상륙에 있어 전략상 덕적도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이었다. 1950년 8월 18일 아군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상륙한 해군 육전대 1소대 1분대장 ‘박동진’은 산악고지로 도주하던 적을 격파하고 덕적도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뒤이어 8월 20일 새벽 육전대는 다음 목표인 영흥도 탈환작전을 전개했다. 앞서 덕적도를 빼앗긴 적군은 격렬히 저항했으나 ‘박동진’을 비롯한 해군 육전대는 국군 포로 4명을 구출하고 적을 맹렬히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해군에게 있어 영흥도 탈환은 이후의 인천상륙작전을 위해서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지상과제였다. 적을 추격하던 중 은신처를 발견한 분대장‘박동진’은 부하들의 전진을 중지시킨 후 수류탄과 함께 엄호사격을 받으며 단독으로 돌진 했다. 첫 번째 수류탄에 이어 두 번째 수류탄을 투척한 순간, 적 탄환이 ‘박동진’의 가슴을 관통했으며 분대장이 쓰러지자 이삼재 부분대장이 분대장을 대신해 또다시 수류탄을 잡고 나아갔다. 얼마 , 적의 집중 사격으로 부분대장마저 쓰러지자 전 분대원들은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했고 해군은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할 수 있게 됐다. 영흥도 탈환은 이어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저작권자 ⓒ 경인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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