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어학연수 중일 때였다. 늦잠을 밥 먹듯 하는 한국인 룸메이트가 어느 날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 수업이 있는 날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일찍부터 준비하는 건가 싶어 오늘 어디 여행이라도 가냐고 물었다. “투표 하러 가야지”하는 대답에 그 친구가 멕시코 선거권자였는지 잠깐 떠올려 봤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들른 한인 음식점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며 요즘 멕시코 선거 기간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나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는 첫 재외선거였다. 역사적인 그 순간 나는 해외에 체류 중이었기에 특별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반면 친구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교통이 열악한 투표소까지 부지런히 가서 특별한 한 표를 행사하고 돌아왔다. 한국에 있을 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투표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기에 충격이 더 컸던 것인지 저녁으로 먹은 음식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재외선거의 필요성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에서 생활하면 그 생활에 적응하여 살아가기에 바쁘므로 정작 한국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지 않냐는 것이다. 누가 출마해서 어떤 공약을 내세우는지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해외에서 장기든 단기든 체류해본 사람은 안다. 되레 밖에 있을 때 애국심이 높아진다는 것을. 현지에서 만난 외국인과의 짧은 인사에서 대한민국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면 호기심을 띤 눈동자가 곧 호의로 바뀔 때가 있다. 그런 때 우리는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손 놓고 앉아서 그런 영광을 바라고 있는 것은 그저 허술한 바람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세계 각국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고 세계적 무대의 각종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조금 거창해서 오히려 남의 일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 나라를 위해서 가장 손쉽게 무엇을 했던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사소하지만 값진 ‘투표’다. 외국에 있을지언정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오로지 그 실체적이지 않은 영광을 위해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투표를 하러 가라고 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하며 공약을 만든다. 재외국민이 선거권자가 된 이상 정치인들은 재외국민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재외국민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이 만들어 질 것이고 그것들이 실현될 것이다. 매 선거마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원이 투표한다고 생각해 보자. 재외국민을 위한, 재외국민에게 필요한 정책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한국에서처럼 5분 쪼개어 집 앞 투표소로 가는 것보다는 절차가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약간의 귀찮음을 상쇄할만한 결과가 기다릴 것이다. 당장 19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하여 3월 30일까지 신고 및 신청이 가능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시간 내어 투표하고 저녁으로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오랜만에 먹는 우리의 음식이 그 어느 때보다 맛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경인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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