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통신

(기고) 발톱의 모양, 정치의 모양

부평구선거관리위원회 자원봉사자 송상현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

경인통신 편집부 | 기사입력 2017/05/01 [23:39]

(기고) 발톱의 모양, 정치의 모양

부평구선거관리위원회 자원봉사자 송상현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
경인통신 편집부 | 입력 : 2017/05/01 [23:39]
얼마 전 발톱 아래 염증이 생겨 병원에 갔다.
양말을 벗고 발을 보이니 의사가 묻는다. 발톱이 원래 이런 모양이었나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발톱이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길었던가 짧았던가. 등쪽이 볼록 튀어나온 모양이었나 혹은 표면에 울퉁불퉁한 주름이 있었나.
정치란 나에게 발톱 같은 것이었다.
어떤 모양인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몰랐다.
심지어 그것이 존재하는지도 평소에는 몰랐다. 공기같은 것, 늘 거기에 있으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중요성 또한 몰랐다.
현재 논란이 되는 경제위기, 안보문제, 외교문제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둘러싸고 그 영향을 받고 살고 있지만 흘러가는 물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정책 혹은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선거에 참여할 때도 반영됐다.
이 후보는 공약은 좋은데 성격이 독선적인 것 같군. 저 후보는 소속 정당이 마음에 드는데 개인의 역량은 부족한 것 같군그런 식으로 기준선 위로 삐져나온 후보들을 하나씩 잘라내고 나면 보통 남는 것은 결국 정치인은 다 똑같다는 혐오뿐이었고 그래서 정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모든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듯 보일 때에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발톱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고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정치는 그런 것이었다.
몇 년에 한두 번 도장이나 찍고 오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며, 저런 진흙탕에는 눈길 주지 않고 고고하게 살아야겠다는 태도만으로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동네 실개천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각자의 삶 전반을 규율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비켜서있다고 생각할 때조차 우리는 각자 그 물줄기의 정 가운데에 서있는 것이다.
정치가 생존의 문제 혹은 실존의 문제라면 선거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달라지는 것이 맞았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정해두고 거기에 미달하면 탈락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처럼 굴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가 나의 세금을 운용하고 외교정책을 결정한단 말인가. 나는 조금 더 치열하게 비교하고 고민해야 마땅했다.
실망도 사치다. 실망하고 포기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후보를 고르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그가 자신의 욕심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정치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많은 경우 정치인에 대한 실망은 영웅화에서 출발한다. 나와 달리 완벽한 누군가가 나타나서 기적같이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그 아래 깔려있다.
그러나 정치는 결국 사람의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분야보다도 더 사람의 일이다. 내가 사람인만큼 정치인도 사람이며 그렇기에 완벽한 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그 자신의 자질보다는 유권자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질책이다.
요순시대에는 백성들이 임금의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정치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삶은 어쩌면 민주주의 시대에도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겨울을 기점으로 그 선을 넘었다.
우리는 기어코 발톱을 보고야 말았다. 그 존재를 인식하고, 그 본래의 모양을 궁금해 하게 됐다. 슬프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발톱의 존재를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투표를 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꼼꼼히 따지고 깊이 고민하되, 사람에 대한 실망이 정치에 대한 절실함을 가려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는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들은, 정치의 모양을 궁금해 하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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