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전일빌딩에 헬기 사격 자행돼공식적인 작전지침에 의거 사전 기획돼 실행됐음이 37년 만에 확인
1980년 5·18 당시 광주 전일빌딩에 헬기 사격이 자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헬기 사격은 도청진압 작전이 전개된 5월 27일 새벽 4시부터 5시 30분 사이 61항공대 202, 203대대 소속 UH-1H기동헬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전일빌딩 등 5·18 기간 헬기 사격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장악한 육군본부의 80년 5월 22일 ‘헬기 작전 계획을 실시하라’는 공식적인 작전지침에 의거, 사전에 기획돼 실행됐음이 37년 만에 확인됐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15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새정부 출범과 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5‧18의 전면적인 진실규명을 통해 역사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전제하며 헬기 사격의 진실을 공식발표했다. 윤 시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일빌딩 탄흔 조사 결과 헬기 사격이 유력하다는 것으로 확인된 후 광주시 5‧18진실규명지원단에 전일빌딩 헬기 사격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연구분석반을 운영해 왔다고 밝혔다. 연구분석반은 나의갑 광주시 5·18진실규명자문관과 석․박사급 5·18 전문연구자 3명,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학예연구사 2명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난 2월 말부터 3개월 여 동안 △5·18 관련 군 문서 △5·18 검찰수사 기록 △대법원 판결문 등 법정기록 △전일방송 재직자 등 증언자 발굴과 청취 △1항공여단 출신 장교와 병사 면담 등을 수행했다. 연구분석반은 “광범위하게 군 문서를 조사하고 증언을 종합해 본 결과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은 11공수 61대대 특공대원의 진일빌딩 진압 작전이 전개된 27일 오전 4시부터 무장헬기 무력시위(새벽 5시16분)가 있던 5시 30분”이라고 밝혔다. 전일빌딩 헬기 사격은 당시 전일빌딩과 인접한 광주YWCA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던 시민군을 사전 제압하고, 이들 건물에 진입한 11공수여단 61대대 2지역대 4중대 공수부대의 엄호를 위해 헬기에 장착된 M60 기관총으로 무차별 사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일빌딩 등 헬기 사격은 육군본부의 작전 지침(1980년 5월 22일 오전 8:30 접수)에 의거해 실시됐는데 구체적인 사격 지점과 대응 태세를 적시하고 있다. 작전 지침을 보면 △고층건물이나 진지형식 지점에서 사격을 가해 올 경우 무장폭도들에 대해 핵심점을 사격 소탕 △무력 시위 사격을 하천과 임야, 산 등을 선정 실시 △상공을 감시 정찰 비행해 습격 방화하는 집단은 지상부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헬기에서 사격 제압 등이다. 육본의 이러한 작전 지침에 따라 5월 22일 이미 광주에 투입된 헬기의 탄약적재 등 무장화가 진행됐으며 21일에 이어 22일 추가로 탄약 수 천발을 탑재한 무장헬기인 AH-1J 코브라 2대, 500MD가 광주에 투입됐다.(육본 상황일지) 특히 육군 참모차장은 5월 23일 전교사 부사령관, 기갑학교장 등에게 무장헬기와 전차를 동원해 시위를 조속히 진압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과 헬기 운영 작전 지침이 확인됐지만 실제 사격의 부대와 조종사, 무장사, 헬기 발포 명령자 등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로, 국가 차원의 전면적인 진실규명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윤 시장은 “광주시는 그동안 광주항쟁의 거대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전일빌딩 헬기 사격 등을 자체 조사해 왔지만 진실의 벽은 여전히 높고 멀기만 하다”면서 “이제 국가가 나서서 5‧18의 진실규명 작업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말했다. 광주시 5‧18진실규명지원단은 15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5월 항쟁 기간 중 전일빌딩 등 광주에서 자행된 헬기 사격과 관련, 5‧18 헬기 사격 종합보고를 개최했다. 다음은 진실규명지원단 연구분석반 연구자와 일문일답. △ 전일빌딩에 헬기 사격을 한 부대는 어디인가 61항공단 예하 202, 203대대 소속 UH-1H헬기이며 정비사(무장사수)가 전일빌딩에 M60 기관총 수백 발을 사격했다. 연구분석반이 조사를 진행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으로부터 전일빌딩 탄흔은 ‘호버링 상태 헬기 공중사격’ ‘M60기관총 탄흔’이라는 결정적인 조사 결과를 통보 받았다. 국과수 조사 결과에 따라 역으로 군 기록과 증언을 청취했는데 M60을 장착할 수 있는 헬기는 ‘UH-1H’ 기종뿐이며 이 기종을 운용하는 부대는 1항공여단 예하 61항공단임을 밝혀냈다. 추가로 군 작전 문서와 61항공단 예비역과의 면담 등을 통해 출동 부대는 202, 203대대로 확인했고, 동시에 검찰 진술조사를 통해서 재확인했다. △ 21일 광주에 헬기가 처음 투입됐는데 첫 작전은 뭔가 1항공여단 지휘관의 진술이 엇갈리나, 당시 헬기 부조종사의 검찰 진술이 진실에 상응하다고 판단한다. 부조종사의 진술을 보면 21일 첫 작전은 도청에 고립상태인 공수대원을 헬기를 통해 빼내오는 것이었다. 즉 당시 광주에 투입된 UH-1H헬기 전체가 동원, 8~10대 종대형으로 고도 1000을 유지한 채 도청 일대에 접근했으나 현장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어 작전을 취소했다. 헬기가 도청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증언도 많았다. 대표적인 증언이 고 조비오 신부다. 21일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말씀드린다. △ 전일빌딩에 대한 구체적인 사격 시점은 연구분석반이 군 기록 및 증언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 시점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5시30분 사이다. 특히 군 문서를 보면 전일빌딩과 YWCA에서 교전이 벌어진 오후 5시 16분 무장헬기의 무력시위가 전개됐다고 기술돼 있다. 광주 시내 한 복판에 헬기가 기동한 것은 21일과 27일이 유일한데, 27일 새벽 도청 진압작전을 기록한 군 작전일지에 등장한다. △ 전일빌딩에 사격한 헬기인 UH-1가 실제로 27일 기동했다는 근거는 27일 UH-1H헬기의 기동 사실은 당시 전남도청 후문에서 시민군으로 경계를 섰던 김모씨와 당시 광주시 서구 사동에 거주했던 이모 씨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 이들이 정확하게 헬기 기종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동일하게 헬기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뛰어내렸다고 증언했다. 당시 헬기 기종 상 병력이동이 가능하고, 헬기 레펠이 가능한 헬기는 UH-1H 밖에 없었다. △ 전일빌딩에 사격을 한 이유는 뭔가 당시 신군부 지휘부는 도청진압 작전을 수립하면서 사전에 첩보를 수집했는데, 그 때 11공수여단 특공대가 점령할 목표인 전일빌딩에는 3명의 시민군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막상 진압작전에 들어가자 전일빌딩과 주변 건물에 최소 40~50명의 시민군이 치열하게 저항, 도청에서는 상황이 거의 종료됐음에도 전일빌딩 쪽에서는 1시간 정도 교전이 벌어졌다. 진일빌딩에 13명의 시민군과 자동화기가 설치된 점을 감안할 때 공수부대의 진압 작전에 앞서 헬기 공중사격을 통한 사전 진압이 요구됐을 뿐 아니라, 1시간 동안 진행된 치열한 교전 상황이 공중 화력 지원을 필요로 했을 수 있다. △ 전일빌딩 이외에 헬기 사격은 있었나 연구분석반 연구진들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일어났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다만, 전일빌딩처럼 물증이 없고 정황만 있을 뿐이다. 우리 연구진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군부는 수차례에 걸쳐 헬기 지휘관에게 헬기 사격을 명령했고, 실제로 코브라 헬기가 출동했으나 현장 상황이 맞지 않아 철수한 적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5월23일 최웅 11공수여단장의 제압 사격 요청이었다. 11공수여단이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민군의 공격을 받자 공중 제압을 요청한 것인데, 실제로 AH-1J(일명 코브라) 2대가 출동했으나 지상에 보병학교 병력이 산개해 있어 사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저작권자 ⓒ 경인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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