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고운기(본명 공진원) 선생만주와 중국 대륙을 누비며 활약한 고운기 선생,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고운기(高雲起, 본명: 공진원, 1907~1943 함경남도 문천, 독립장(1963)) 선생을 2017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함경남도 문천 출생이며 그의 부친 공창준은 을사늑약 직후 홍범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1931년 한국독립군 6중대장으로 중국의 반만항일군과 연합해 대일항전을 전개했으며 1932년 서란현전투에서 일본군 1개 분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거뒀다. 1933년 선생은 중국으로 이동해 1934년 2월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해 훈련을 받고 1935년 4월 졸업했으며 1937년 지청천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혁명당에 참여해 활동했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혁명당은 김구가 주도하는 한국국민당, 홍진·조소앙이 주도하는 한국독립당(재건)과 연합해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했으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게 됐다. 1938년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장으로서 선전활동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으며 항일투쟁의 대열로 참여시켰다. 1940년 충칭에서 광복군이 창설되자 2지대장에 임명됐고 시안으로 이동해 병력을 모집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징모 2분처의 책임자로써 한인 청년들을 모집했다. 1942년 충칭으로 다시 돌아온 선생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광복군의 자율적인 활동을 제한하던 ‘한국광복군행동9개준승’을 취소시키는 작업을 추진하다가 병을 얻어 1943년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1963년 고운기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저작권자 ⓒ 경인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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