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통신

한국 의학계의 숨은 거인 ‘일송 윤덕선’

‘일송’삶 정리하고 재조명한 ‘일송 윤덕선 평전’ 출간

이영애기자 | 기사입력 2016/03/24 [21:13]

한국 의학계의 숨은 거인 ‘일송 윤덕선’

‘일송’삶 정리하고 재조명한 ‘일송 윤덕선 평전’ 출간
이영애기자 | 입력 : 2016/03/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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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기념사업회는 한림대학교와 한림성심대학교
, 한림대학교의료원의 설립자 일송(一松) 윤덕선(尹德善) 박사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정리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일송 윤덕선 평전을 출간했다.
1921년에 태어나 일본인에게 고개 숙이지 않고 살기 위해 의학도의 길을 택한 일송은 백병원, 가톨릭 의과대학과 성모병원, 필동성심병원을 거치며 외과의사이자 교육자로서 비범한 성공을 이뤘다.
일송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강성심병원 설립을 시작으로 전문 의료 경영인의 길에 들어서 동산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을 차례로 설립한다.
이 병원들은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병원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의 공공재라는 그의 신념에 따라 지역의료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또 일송은 진료와 교육, 연구의 연계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림대학교를 설립하고 춘천간호전문대학(현 한림성심대학교)을 인수해 인문적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지식인, 전문가 양성에 노력했다.
한림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일송이 세운 병원들은 대학의 부속병원이 됐고 현재 한림대학교의료원은 한림대학교성심병원과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등 6개 의료기관, 4000병상으로 운영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기관이 됐다.
이렇듯 한 사람이 이루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며 한국 현대사의 든든한 주춧돌이 돼 온 일송의 삶을 후학들이 차곡차곡 기록해 그의 평전을 완성했다.
개인의 안위와 성공을 지상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오늘날, 의료라는 도구를 이용해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한 일송의 일대기는 비범한 개인의 성공담에 그치지 않고 읽는 이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일으킨다.
한국 의학계의 주춧돌 : 병원 경영의 선구자
일송은 평생 의사의 길을 걸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공대 진학을 고려했지만 일제의 압제하에서 일본 사람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다라며 의대 진학을 강하게 권하는 부친의 뜻에 따라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했고, 그 길의 시작됐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일송은 당대 제일의 외과 의사라고 일컬어지던 백인제 박사의 지도 아래 새벽부터 밤까지 회진, 수술, 당직이 이어지는 고된 수련기를 거치며 외과의로 성장했다.
한국전쟁기에 백병원 외과에 근무하던 그는 약 1년간 미군 야전병원에 출퇴근하며 임상병리와 보존혈액 기술을 배워 백병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혈액원을 창설했다.
미군 병원에 다니며 맺은 인연을 통해 2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일송은 1956년에 성신대학 의학부(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부임해 10여 년 동안 가톨릭 의대와 부속 성모병원을 이끌며 학교와 병원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발전의 와중에 빚어진 갈등으로 인해 일송은 가톨릭 의대를 그만두고 함께 사표를 낸 13명의 교수들과 연구와 교육, 진료를 통한 사회봉사를 목표로 1968년 한국의과학연구소라는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종합병원인 필동성심병원을 부속병원으로 설립했다.
개원 초부터 환자가 몰려 병원이 큰 성공을 이루자 일송은 새 병원 설립을 모색했다.
일송은 소외되고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지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영등포 지역에 병원을 세우고자 했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이 반대해 거의 독자적으로 일을 추진해 1971년 첫 개인 종합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을 개원했다.
개원에 앞서 의과대학을 세우고자 하는 중앙대학교의 제안에 따라 필동성심병원과 한강성심병원은 중앙대 의과대학 부속 제1병원, 2병원으로 개편했고, 일송은 중앙대 의무원 초대 원장이 됐다.
하지만 정부의 의료법 개정에 따라 일송이 성심중앙유지재단이라는 의료법인을 만들면서 중앙대와의 인연이 끝나고 대학 부속병원으로 운영됐지만 사실상 개인 병원이었던 한강성심병원은 재단 부설 병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일송이 이사장으로 있던 성심중앙유지재단은 병원을 계속 확장해 1977년에는 서울동산병원을 인수해 동산성심병원을 개원한 데 이어 강남성심병원(1980), 춘천성심병원(1984), 강동성심병원(1986)을 차례로 개원했고 환자가 많은 곳에 병원이 찾아가야 한다라는 일송의 소신은 병원 건립의 기본 방침으로 계속 이어졌다.
한국 현대 의료인 가운데 일송처럼 많은 병원을 설립하고 성공으로 이끈 이는 없었다.
일송은 갈등과 시련이 있을 때마다 기존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믿을 수 없는 성공 신화를 이뤘고 많은 병원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현대 의료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는 병원 경영의 귀재, ‘병원 왕이라 불렸다.
하지만 일송은 병원 재벌이라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했으며 병원을 개인 소유로 두지 않고 재단을 설립해 운영했다.
일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병원은 사기업이 아니고, 병원은 국민의 것이며, 경영자는 관리자라거나 병원을 해서 돈을 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병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훌륭히 키우겠다고 결심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송은 학창 시절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땅에 묻혀서 주춧돌이 되어라. 외부에 나서지 마라.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너는 뒤에서 뒷받침을 해라라는 좌우명에 자신을 비추며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19967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기까지 일송의 삶이 차곡차곡 기록된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우리나라에는 지도자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지도자가 없다기보다는 땅에 묻힐 주춧돌 노릇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위에 튼튼한 국가를 세울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 좌우명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지키며 살아왔다라는 일송의 호언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연보 요약]
1921111일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출생.
19423월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1964~1971년 대한병원협회 이사.
1969~1970년 대한외과학회 회장.
~197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회장.
19711210일 한강성심병원 설립.
19823월 한림대학 개교.
4월 제10회 보건의 날 국민포장 수상.
19833월 춘천간호전문대학(현 한림성심대학교) 인수.
19841210일 춘천성심병원 개원.
1022일 강동성심병원 개원.
198911~1996년 일송학원 명예 이사장.
19901월 한림과학원 창설.
199210월 성심복지관(봉천사회복지상담소) 개관.
1996310일 제주도에서 귀천.
314일 영결식 거행, 정부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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