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통신

화성 ‘당성’은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

명문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 대거 발굴돼

이영애 | 기사입력 2021/05/11 [23:45]

화성 ‘당성’은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

명문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 대거 발굴돼
이영애 | 입력 : 2021/05/11 [23:45]

 

사진3-1. 당성7차 발굴조사 자문회의 사진.jpg

 

[경인통신=이영애 기자]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삼국시대 신라 성곽인 당성이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다량으로 추가 발견됐다.

 

11일 화성시에 따르면 지난 7일 열린 화성 당성 7차 정밀 발굴조사현장에서 열린 결과 보고회 겸 학술자문회의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이 공개되며 당성의 역할과 위상이 재조명됐다.

 

문화재청의 허가와 시의 의뢰로 발굴조사를 맡은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이번 발굴에서 여러 차례 증·개축된 대형 건물지에서 명문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을 발굴했다.

 

안신원 한양대학교 박물관장은 이번 발굴에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과 국제 교류관계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대거 발굴됨에 따라 과거 당성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당성은 행정적, 군사적 거점이자 대중국 교역의 중요기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당성 초축과 관련된 1차성 내의 대형 건물지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뤄졌다.

 

해당 건물지는 적심이 축조된 층위와 축조 방식, 형태 등을 보아 6세기 후반에서 12세기에 이르기까지 3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개·보축 등 확장됐으며 기존의 적심과 초석이 재활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3-5. 청동 초두.jpg
청동 '초두'

 

여기에 출토된 유물들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이후부터 고려시대 초·중반까지의 것들로 행정기관에서 사찰로 변모하는 특성을 보이며 2차 축성의 이유를 파악하는 근거가 될 전망이다.

 

이중 특히 주목되는 유물은 명문와.

 

신라의 핵심세력인 6부 중 하나로 본피모(本彼謀)’양모(梁謀)’명 기와가 출토돼 신라 중앙정부로부터의 관리를 받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관청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관택(舘宅)’, ‘()’명 기와, 건물의 기능 변화와 관련된 신동(新棟)’, ‘백사(白寺)’등이 새겨진 기와가 함께 발굴됐다.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와로 임신((壬申)’, ‘무인(戊寅)’, ‘병오(丙午)’명 기와와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의 하나로 686년 설치돼 757년 웅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된 웅천주(熊川州)’명 기와도 출토됐다.

 

또 중국 당나라 시기에 백자를 굽던 유명한 가마터인 형요(邢窯)’와 중국 하북성(河北省)에 있던 백자 가마터인 정요(定窯)’ 백자편과 중국 저장성(浙江省)을 중심으로 발달한 청자 가마터인 월주요(越州窯)’ 청자편이 출토돼 국제교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술·음식·약 등을 끓이거나 데우는 데 사용하던 용기로 대부분 다리가 세 개인 청동 초두(鐎斗)’가 출토됐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당성의 초축시기와 삼국시대 이후 당성의 기능을 확인하는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당성의 역사적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 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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