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통신

(11월의 6·25전쟁 영웅) 찰스 그린 호주 육군 중령

호주의 별,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산화하다!

이영애기자 | 기사입력 2015/11/03 [17:37]

(11월의 6·25전쟁 영웅) 찰스 그린 호주 육군 중령

호주의 별,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산화하다!
이영애기자 | 입력 : 2015/11/03 [17:37]
22찰스 그린 호주 육군 중령.jpg

찰스 그린 중령은
2차 세계대전 동안 24세의 나이로 호주 최연소 대대장이 돼 활약했다.
종전 후에는 일반인으로 돌아와 부인과 어린 딸의 가장으로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새로이 창설된 정규 육군 첫 호주 보병대대 지휘관으로 선임돼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그린 중령은 195098일 일본에 도착했다.
당시 그린 중령이 담당하던 대대는 새로 창설돼 훈련 수준이 빈약한 상태였다.
그린 중령은 체계적인 훈련과 뛰어난 통솔력으로 몇 주 만에 적군에 맞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견실한 전투부대로 바꿔 놓았다.
그린 중령과 호주 육군 제3대대는 928일 부산에 상륙한 뒤 영연방 27연대에 배속돼 연천전투박천전투 등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북진을 계속했다.
19501029일에는 정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또 한 번의 승전보를 울렸다.
그러나 다음 날 달천강근처에서 진지를 구축하던 중 그린 중령은 북한군이 쏜 포탄 파편에 복부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즉각 근처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안타깝게도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늘 침착하고 조용히 부대원들을 챙기는 지휘관이었던 그는 치명상을 입고 후송되는 동안에도 다른 부대원들의 안위를 염려했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현재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당시 3대대의 정보장교였던 알프 알전트는 그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한국에서 그의 통솔은 항상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믿을 수 있는 명확하고 간결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항상 선두로 나가 있었고 주력 중대 그룹 바로 뒤에서 지휘했습니다
 
그린 중령은 전투에서의 뛰어난 공을 인정받아 미국 은성훈장을 비롯해 15개의 훈장을 받았다.
당시 3살이었던 딸을 키우며 평생 수절한 올윈 여사가 전사한 남편을 회고하면서 쓴 책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는 호주전쟁문학의 뛰어난 성과로 꼽히고 있다. (자료제공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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